'작은 상상력의 장난감'… 성 보조기구가 어때서?
[민권식의 성의학바이블]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도시 번화가를 거닐다 보면, 성인용품점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눈에 띄는 풍경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커플들이 다양한 제품 앞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일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십수년 전만 해도 성 보조기구는 모태 솔로나 이용하는 은밀하고 저급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8년 국내에서 관련 법규가 완화되며 이 기구는 점차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020년대에 들어, 20대의 3분이 1이상이 성 보조기구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는 이 변화의 속도와 폭을 실감케 한다.
30대는 단독 소비도 있지만 커플이 사용할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주로 남성들이 이용하는 경향이 뚜렷했지만 최근에는 여성의 구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남성은 성욕 해소가 주목적이어서 단독 소비가 대부분이지만, 여성은 자기 탐색이나 심리적 만족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단독 사용과 커플 사용이 균형을 이루는 소비 형태로 나타난다.
커플이 성생활에 익숙해질수록 한편으로 권태감이 조금씩 싹트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을 ‘쿨리지 효과’라 부른다. 수컷이 동일한 암컷과 교미를 계속하면 교미 횟수가 줄어드는 반면, 암컷이 교체되면 교미 횟수가 증가하는 효과를 말한다. 단일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반응성이 떨어지고, 새로운 자극이 주어질 때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일부일처인 인간에게서 이런 효과를 상쇄시키기 위한 것이 새로운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다.
성 보조기구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대안을 제공한다. 평소의 일상 극복을 위한 노력을 넘어서, 관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성감의 지형도를 넓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 보조기구를 다양하게 내 몸에 적용하다 보면 자신의 성감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발견들이 성적 자신감, 즉 자기 효능감으로 이어져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빈도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커플이 성 보조기구를 사용하면 다양한 대화나 호기심 있는 행동들이 증가해 성적 이해도와 성생활 만족도가 높아지고, 정서적 친밀감도 깊어진다. 특히 장기 커플일수록 성 보조기구에 대한 호기심을 관계의 새로움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어 권태로운 일상을 극복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성 보조기구를 ‘작은 상상력의 장난감’이라 표현하는 이유다.
그러나 무엇이든 무분별한 사용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성 보조기구로 지나치게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파트너로부터 받는 성적 자극이 약하게 느껴져 오르가슴 도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포르노 소비가 규칙적이고 과도해지면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 실제 성생활에서의 성적 자극으로는 흥분이 잘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바이브레이터는 강한 진동을 자주, 장시간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큰 구경의 딜도는 실제 성관계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다.
커플이 같이 사용하더라도 성 보조기구로 습관화된 자위가 파트너에게 노출될 경우, 정서적 거리감과 신뢰 훼손이라는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성병 전파의 위험이 있는 파트너는 성 보조기구가 성병 매개체가 될 수 있으니, 기구를 서로 공유하지 않아야 한다. 사용 후에는 세척, 청결 유지도 유념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딜도에 콘돔을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회문화적 부분도 부담이 안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파트너가 함께 사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존중해 줘야 한다. 일본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성 관련 도구 시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보조기구에 대한 노출이나 커플 사용에 대해선 여전히 폐쇄적이다. 그래도 국내는 20대 남녀에서 성 보조기구가 성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고 있고 커플 사용도 늘어 긍정적인 추세라고 생각된다. 다만 국내에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성 보조기구를 위한 적절한 성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한 과제로 남아 있다.
성 보조기구 사용을 매개로 커플의 대화가 더 많아지고 친밀감도 더 좋아졌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들린다. 적절히 사용하면 성 보조기구는 자극만 주는 단순 도구가 아니라 싱글에게는 성감 개발 및 유지, 커플에게는 관계 개선이라는 단순 도구 이상의 가치도 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46/0000092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