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손으로 만지니 '톡톡'…'기후 유언장' 남극 빙하가 소리 질렀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SM_SNAIL 2025. 2. 16. 22:29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극지방에서 가져온 빙하 코어의 일부분(서울대 자연과학대학)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해 아이슬란드 기후위기 취재에 앞서 빙하를 만질 기회가 있었다. 남극이나 북극으로 취재를 간 건 아니고, 안진호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연구진과 함께 지하 3000m 이상을 뚫어 가져온 것의 조각이다.

손으로 만지니 녹으면서 톡톡 소리가 났다. 빙하가 얼어 있을 때 기체가 갇혀 있다가, 압력이 낮아지면서 기체가 방출되며 나는 소리다.

빙하고기후연구실(LICP)은 이런 기체를 모아 측정하고, 빙하가 얼었을 때의 기후·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압축된 암석층을 통해 과거 지질환경을 살피는 것처럼 과거의 숨을 살피는 셈이다.

빙하학자들은 이를 통해 현대의 기후변화를 추적하고,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급격하게 빨라진 기온 상승을 주장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그간 1850~1900년대, 즉 산업화 시기를 '가까운 기준'으로 삼았다면, 인류의 탄생 더 나아가 생명의 탄생 같은 '먼 기준점'을 놓고 탐험하는 게 빙하학자인 셈이다.

10만년 주기로 4~5도 오르던 지구 평균온도 변화가 최근 200년 만에 일어났다는 발표도 빙하학자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기준점'에 의해 가능했다.

다만 이 연구는 '시간제한'이 생겼다. 빙하가 운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신진화 빙하학 박사는 '빙하 곁에 머물기'를 통해 이런 내용을 지적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2100년까지 지구 빙하의 최대 83%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빙하학자들은 빙하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신 박사는 "46억년의 지구의 역사 중 남극에서 시추한 빙하 코어로 80만년 동안의 기후·환경을 연속적으로 복원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빙하연구는 -60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서 지하 깊은 곳을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각국 학자들은 힘을 모으고, 빙하를 나눠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를 빠르게 발표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일반 학계와 차이점이다.

빙하는 기후 문제만의 대상은 아니다. 수십 수백년 전의 화학 사고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신 박사는 로키산맥의 얼음에서 살충제가 발견된 사례를 들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빙하를 '기후 유언장'이라고 칭했다. 빙하는 과거의 기후를 기록한 동시에, 현재의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탄인 셈이다.

빙하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직 희망이 있다. 빙하학자들의 노력처럼,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후 유언장'을 읽고도 외면한다면 현세대와 다음 세대는 해수면 상승과 극단적 기상이변, 생태계 붕괴 같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빙하가 사라지면서 남긴 마지막 비명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