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비타민C 꼬박꼬박 먹었는데…"사망률 높인다" 권장섭취량의 함정 본문
메타분석의 세계 ②.끝. 명승권 교수가 말하는 건강기능식품과 권장섭취량

벌에 쏘였을 때 된장을 바르고 체했을 때 손을 따는 건 널리 알려진 민간요법이다. 홍삼이나 비타민C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지고 체력이 좋아져 감기 덜 걸리고 건강하다며 건강기능식품(건기식)에 돈을 쓴다. 모두 큰 부작용이 없고, 값도 싸거나 아예 돈이 들지 않으니 '보험 드는 셈' 치고 해본다. 잊을 만하면 홈쇼핑과 SNS(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 "연구와 논문으로 효과가 입증됐다"라거나 "실제 건강해진 환자가 있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그런데, 사실은 모르는 것보다 '조금만 아는 것'이 의학적으로는 더 위험할 수 있다. 건기식과 민간요법에 의존하다 환자가 병을 키우고 오히려 다른 병에 걸리는 경우가 실제로도 많다. 애꿎은 데 '헛돈' 쓰는 걸 알고도 위안 삼아 먹는다면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다. 이미 18년 전 비타민C, E, 베타카로틴과 같은 항산화제는 오히려 사망 위험을 5% 높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칼슘과 비타민D는 골절을 막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근력을 낮춰 낙상 위험을 키우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마지막에 종합)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보건 AI 학과 교수가 메타분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
의료계가 건기식의 '두 얼굴'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질병의 인과관계와 약의 효과를 밝히는 임상시험 방식(환자-대조군 연구, 코호트 연구)이 1930~1940년대 등장하면서 이를 '근거'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문제는 이런 임상시험들이 각각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임상시험 대상자가 몇 명인지, 어느 기업·기관에 지원받았는지에 따라 연구 디자인과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커피를 먹으면 좋다고 하지만 누구는 나쁘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방식이 '체계적 문헌 고찰', 그리고 '메타분석'이다. 체계적 문헌 고찰은 특정 주제로 지금까지 나온 임상 연구를 종합해 나열하거나, 질적 수준이 높은(연구 대상자가 많고 방식이 정확한) 연구만 골라 모두 분석하는 방식으로 "좋다" "아니다"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메타분석은 체계적 문헌 고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러 논문을 하나로 종합해 '숫자'로 결과를 낸다. 현대 의학을 구성하는 근거중심의학의 '끝판왕'인 셈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건강식품코너에서 고객이 건강기능식품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보건 AI 학과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우리나라 '메타분석 1세대'이자 현재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의사 과학자다. 미국 질병 예방 특별 위원회(USPSTF), 미국심장학회(ACC) 등이 명 교수의 메타분석 논문을 근거로 진료 지침 등을 개정했다. 논문 발표 시 센세이셔널했던 내용들이 많지만 시간이 흐르며 '정설'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비타민제 먼저 끊으셔야겠습니다', '어머니, 지금 영양제 끊어도 잘 자랍니다'와 같은 책과 강연, 신문·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건기식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명 교수는 "건기식이 진정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병이 자연 치유돼 낫는 것인지 △심리적 기대효과(플라시보 이팩트) 때문에 좋아진다고 여기는 것인지 △이 전에 '정식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건지 많은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며 "메타분석을 통해 이런 오류 요인을 걷어내면 대부분은 효과가 없다고 나온다"고 강조했다.
18년간 메타분석을 '무기'로 의학 근거를 쌓아온 명 교수는 요즘 '영양섭취기준'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비타민C 하루 권장섭취량은 영국 40㎎, 우리나라와 일본은 100㎎, 프랑스는 11㎎으로 나라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건강한 사람 100명이 어떤 영양소를 많이 섭취하는 순서대로 줄을 섰을 때 상위 2.5%에 해당하는 양을 권장섭취량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연구는 없이 "영양 섭취가 많은 사람이 줄이는 건 문제지만 적은 사람이 올리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게 기본 논리다. 인종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권장섭취량은 각 나이대와 성별에서 건강한 사람들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97.5%가 만족하는 양이다. 평균필요량으로 계산하며 이 보다 약 20% 많다. 평균필요량은 과학적 문헌 리뷰에 근거해 특정 나이 그룹의 사람들의 50% 정도가 필요로 하는 요구량이다./자료=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
건기식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장섭취량을 기준으로 삼을 때 영양결핍이라며 건기식이나 영양보충제를 먹는 사람도 알고 보면 영양과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활성산소는 세포 손상과 노화를 촉진하는 반면 이물질과 병원체를 제거하는 역할도 갖는다. 아예 없으면 오히려 몸에 병이 든다. 이런데도 권장섭취량만 따져 활성산소를 줄이는 비타민C 등 항산화제를 마구마구 먹다 보니 '득보다 실'이 커져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졌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 70%가 결핍이라는 비타민D도 마찬가지다.
명 교수는 지난해 8월 "권장섭취량의 새로운 개념과 정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SCIE 국제학술지 '영양'(Nutrition)에 기고한 데 이어 오는 4월 부산에서 열리는 '2025년 세계가정의학회 아시아태평양 학술대회'에 특별 세미나를 통해 학계와 일반 대중에게 이를 더욱 널리 알릴 계획이다. 명 교수는 "의학은 관성의 학문이 아니다. 기존의 것을 받아들이지만 말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꾸준히 발전해나가야 한다"며 "영양섭취기준과 건기식의 효과에 대해 의학, 영양학, 역학, 보건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쟁·토의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 교수가 지금까지 낸 메타분석 연구△비타민A, 비타민C, 비타민E 등 비타민은 암과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는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방광암 발생률을 다소 높인다.
△비타민C 보충제가 고혈압을 관리하고 감기 예방이나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단독 사용 시 폐암 예방 효과는 없다. 하루 1000㎎ 이상 고용량 비타민C 요법은 위장관 장애, 신장결석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비타민D 보충제는 노년 골절이나 골다공증, 암, 심혈관질환 발생을 예방하지 못한다. 과잉 섭취할 경우 신장 결석, 연부조직 석회화 등 일으킬 수 있고 근육이 약해져 낙상 위험이 커진다.
△칼슘 보충제가 골다공증을 예방해 골절을 막는다는 근거는 불충분하다. 오히려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오메가3 보충제를 먹어도 심부전,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 발생이나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
△글루코사민의 관절염 통증 감소 효과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다.
△홍삼은 면역력 증진, 피로 개선, 혈액 흐름 및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졌으나 실험실 연구나 동물실험, 소규모 임상시험 결과에 근거해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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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C 꼬박꼬박 먹었는데…"사망률 높인다" 권장섭취량의 함정
수 없이 쏟아지는 건강정보의 홍수 속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 때다. 개별 연구를 통합해 하나의 결과를 제시하는 메타분석은 가장 믿을만한 '근거'가 된다. 국내 메타분석 전문가인 명승권 국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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