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월급쟁이 세금 깎아주겠다'... 이 말이 감추고 있는 진실 본문
[최기원의 세금 이야기] 이재명 대표의 '월급쟁이 감세론', 상위 10%만 웃는다다른 시각에서 정부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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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는 모습.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월급쟁이는 봉인가"
"물가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
"초부자들은 감세해 주면서 월급쟁이는 사실상 증세"
근로소득세 감세 논의를 불러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18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짧은 글이다. 이건 이재명 대표가 국면 전환용으로 뜬금없이 던진 내용이 아니라, 이미 수년간 반복되며 강고하게 자리잡은 더불어민주당의 '월급쟁이 감세론'을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 노웅래, 이인영, 고용진, 김두관 의원은 과표의 물가 연동 등 수십조 원 규모의 근로소득세 감면 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에 대항해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구호는 근로소득세 감세를 필두로 한 '서민 감세'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아예 당 차원에서 근로소득세 감세를 위시한 세제 개편을 목표로 하는 '월급방위대'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이재명 대표는 '월급쟁이가 봉이냐'라며 여당에 토론을 제안했고, 지난 6일에는 이를 주제로 하는 국회토론회도 열렸다.
그러나 민주당의 열정과는 별개로 '월급쟁이 감세론'은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면 말이다.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대한민국 월급쟁이는 봉인가?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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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 유성호 |
2023년 대한민국 근로소득세율은 6.8%(OECD 국가 평균 15.4%)다(Taxing Wages 2024, 부양가족 없는 개인 기준). OECD 38개국 중 34위로, 대한민국의 뒤에 있는 국가로는 폴란드, 칠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뿐이다. 고세율 국가인 덴마크(36.0%), 벨기에(26.0%), 호주(24.9%) 등에 비교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부담을 합쳐서 비교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부담률 16.2%로 전체 평균인 24.9%에 미치지 못하고, 역시 34위에 머문다.
급여에서 근로소득세 결정세액을 뺀 1인당 처분 가능 소득은 2010년 2474만 원에서 2023년 5340만 원으로 215% 증가했다(국세통계연보 기준). 이는 같은 기간 대한민국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68% 성장을 47%p 상회한다. 즉 세액을 제하더라도 소득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앞질렀다는 뜻이다.
높은 임금상승률이 근로소득세의 높은 증가율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애초 극히 낮았던 근로소득세율이 좀 높아진다고 해서 가처분소득의 고성장을 제약할 수준만큼 유의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저부담·저복지 사회에 머물지 않고 OECD평균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사회에 도달하려 한다면, 근로소득자들은 줄잡아 지금의 두 배의 세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충분한 세원을 확보할 수 없다면 말이다.
법인세수는 줄고 근로소득세만 늘었다?
법인세는 줄었는데 근로소득세는 지속적으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논법은 어떨까. 법인세수와 근로소득세수 모두 증가 추세지만, 근로소득세의 증가 폭이 더 가파른 건 사실이다. 2014년 25.4조 원이었던 근로소득세수는 10년 만에 59.1조 원으로 2.3배가 되었고, 법인세는 42.7조 원이었던 법인세수는 80.4조 원으로 1.9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는 해당 기간 근로소득의 증가가 법인의 영업이익 증가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의 꾸준한 증가가 의미하는 것은 근로소득의 꾸준한 증가다. 임금불평등의 문제를 제쳐둔다면, 노동자들의 월급은 전체적으로는 꽤나 올랐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영업이익에 과세하는 법인세는 세수가 일정한 근로소득세에 비해 변동이 큰 세목이다. 경제위기가 빈발하는 시기에 특정 수출대기업의 실적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는 그 진폭이 극도로 커지게 마련이다. 앞선 법인세와 근로소득세의 비교에서 기간의 마지막 연도를 역대급으로 좋았던 기업 실적을 반영한 2022년으로 바꾸면 법인세의 증가율은 1.9배에서 2.4배로 훌쩍 뛰어 해당 기간의 근로소득세 증가율을 뛰어넘는다.
반면 최악의 기업실적이 반영된 2024년으로 설정하면 1.5배로 근로소득세 증가율을 크게 하회한다. 평균적으로 법인세 증가율이 근로소득세 증가율을 밑도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변덕스러운 법인세수 상황을 고려하면 특정 기간의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영역인 것이다.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오해 중 하나는, 윤석열 정부가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감세해 줬는데, 서민들에 대한 근로소득세는 증세했다는 주장이다. 2022년 세법개정에서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근로소득세도 엄청나게 깎아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의 소득세 과표조정으로 5년간 13.3조 원의 세수감소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법인세 과표 조정에 따른 15.7조 원의 세수감소 예측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2023년 1인당 근로소득세 부담은 소득증가에 불구하고 오히려 줄었다. 여기에 근로장려금의 증액, 온갖 비과세 및 세액공제 확대를 더하면 근로소득세 감면액은 더욱 불어난다.
애시당초 법인에게 부과하는 법인세와 자연인에게 부과하는 근로소득세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논법은 성립하기 어렵다. 운영방식도 세율구조도 판이하게 다르다. 설령 비교할 수 있다 치더라도, 법인세수를 능가하는 근로소득세의 증가 양상은 임금 자체의 견조한 증가와 기업실적의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가가 오르면 세금을 낮춰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페이스북 글에서 보듯 이런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물가 상승 때문에 실질임금은 그대로인데, 과표가 올라서 누진제에 따라 세금 부담이 확 늘었다는 주장이다. 이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부담이 늘더라도 한국의 조세구조에서 그 수준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세통계연보상 2021년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1292만 명은 평균적으로 5408만 원을 벌고 408만 원을 근로소득세로 냈다. 2022년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1396만 명은 평균적으로 5768만 원을 벌어서 428만 원을 근로소득세로 냈다. 근로소득은 6.7% 늘었는데, 세액은 4.9% 증가에 그쳤다.
2022년 물가상승률이 5.1%였으니 평균적인 근로소득의 증가율은 물가상승률보다 높았고 세액증가율은 도리어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소득이 360만 원 늘었지만 세액은 20만 원 증가에 그쳐 근로소득자 집단 전체로는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가처분소득 상승을 누린 셈이다. 2021년에는(2022년 적용) 유의미한 근로소득세법 개정은 없었다.
소득세 최상위 구간이 아닌 이상 누진세제에 따른 근로소득세 증가는 그다지 크지 않다. 소득이 특정 과표에 도달한다 해도 모든 구간에서 세율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과표 초과분에 대해 한 구간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의 근로소득세 과표가 5% 올라서 200만 원의 소득이 8800만 원 이상 구간에 걸리게 된다고 하면, 누진세 때문에 추가로 내는 세금은 18만 원 정도다. 전체 세율을 0.2% 끌어올리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소득공제를 뺀 '과표'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소득 대비 세율 상승분은 더욱 축소되고, 물가가 오르면 공제도 커지므로 실제 추가세액은 더더욱 줄어든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중하위계층의 근로소득세는 바닥 수준이고 공제는 매우 큰 나라이므로 실효세율의 증가는 대단히 미미하다. 2% 실효세율이 50% 오른다고 해도 1%p 상승에 그친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그러니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문제일 수는 있어도, 누진세로 부담하는 추가세액은 그다지 문제가 될 수 없다. 임금의 상승분이 이를 압도하고도 남는 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2010~2023 소비자물가는 30%가량 올랐지만, 소득세를 뺀 1인당 근로소득은 두 배로 증가했다.
누구를 위한 근로소득세 감세인가
'월급쟁이 감세론'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깎아줄 세금조차 없는 전체 노동자의 35%에 달하는 실효세율 0%의 700만 명 저소득 그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실효세율이 4% 수준인 근로소득 4000~6000만 원 그룹이 얼마나 감세 필요성을 느낄 것인가?
2010년 이후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의 추이를 보면 고소득층의 세율 상승폭이 뚜렷하게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OECD 자료 기준으로 평균임금의 67% 집단(저소득층)은 2010~2023 13년 동안 세율이 2.1%p 올랐다. 평균임금 집단은 해당 기간동안 2.3%p 올랐다. 그러나 상대적 고소득층인 평균임금의 167% 집단은 3.5%p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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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2023 소득별 근로소득세율. 단위는 %. 저소득층은 평균소득의 67%, 고소득층은 평균소득의 167%를 뜻함. OECD Taxing Wages 기준. |
ⓒ 최기원 |
2022년 거대양당이 합심해 통과시킨 소득세 과표 조정의 결과는 뚜렷하게 고소득층의 이익으로 귀결됐다. 국세통계연보상 총급여 6000만 원 이하 그룹(약 1800만 명)에서 세율은 0~0.3%p 하락했다. 1인당 0~18만 원의 감세 혜택에 그친 것이다. 그러나 6000만 원 이상 그룹(약 300만 명)의 세율은 0.3~1.0%p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상위 구간에서는 1인당 최소 1000만 원에서 수억 원의 혜택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수혜자인 초고소득층 외에 눈여겨보아야 할 그룹이 있다. 각종 공제의 효과로 낮은 실효세율을 누리다가 소득 상승을 공제로 커버할 수 없어 높은 실효세율을 부담해야 하는 구간에 진입한 상위 계층이다. 총급여 1~2억 원 구간에 들어서게 되면 실효세율이 두 자리가 되면서 5%p 수준의 대폭의 세율 상승을 경험하게 되고, 이들이 2~3억 원 구간으로 진입하면 8%p 수준의 추가 세율 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약 140만 명에 달하는 이들 상위 10% 집단의 불만이 '월급쟁이 감세론'에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대체로 서울·수도권·남동지역에 거주하는 대기업 정규직 및 지식산업 종사자, 기업의 간부, 전문직으로 기혼가정의 일원으로서 높은 교육수준을 배경으로 한 여론주도력과 투표 영향력을 갖춘 그룹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30만 표차로 패배한 서울, 그리고 경기도와 낙동강 벨트에서 기대 이하였던 득표력을 끌어올리는 게 지상과제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는 '월급쟁이 감세론'은 매우 구미가 당기는 담론이 될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노웅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기획재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근로소득세 과표를 물가에 연동하게 된다면 매년 11.3조 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기능 약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이 세수는 대부분 상위 10%의 소득으로 귀속될 것이며, 해마다 누적된다. 민주당 버전의 '부자감세'인 것이다.
이런 조치는 상속세와 보유세의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흐름과 결합해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고 특권계급의 형성을 촉진하는 길을 열 것이다. 반대로 현재의 수많은 도전과제들을 수행할 재정 확대의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산업정책을 수행하며, 고령화와 지역소멸에 대비할 재원을 포기하고 고소득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연간 100조 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재정적자가 매년 반복되는 현실에서 연간 11조 원의 감세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복지와 사회기반서비스의 축소 압력으로 이어지거나 부가세 증세 압력으로 결국 다수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어들인 모든 소득을 본인과 가족이 대대손손 가져가고픈 이들의 욕망을 통제하면서, 사회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기획하며, 구성원 모두의 안녕을 보장하고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지켜내고, 특권계급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공화국이 다음 정부의 길이라 믿는다면, 이 시점에서 근로소득세 감세는 잘못된 길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은 감세정당일 수 없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5811?cds=news_media_pc&type=editn
'월급쟁이 세금 깎아주겠다'... 이 말이 감추고 있는 진실
다른 시각에서 정부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 서울 서초구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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