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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두 번, 하지와 동지에 가면 더 좋습니다

SM_SNAIL 2025. 4. 2. 12:01

[도쿄말고 근교] BTS RM이 방문한 곳, 오다와라 에노우라 측후소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자말>

춘분이 지나자, 공기 속에 완연한 봄기운이 스며들었다. 태양의 중심이 하늘의 적도와 나란히 놓이는 춘분은 농경사회에선 한 해를 준비하는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절기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절기와 상관없이 출근하고, 실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며, 밤에도 불빛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꽃이 피어나는 현상 너머의 흐름은 인지하지 못한 채 봄날은 지나간다.


그런데 도쿄 근교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절기에 대한 감각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오다와라에 위치한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다. 이곳은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설치미술 작가인 스기모토 히로시가 설립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측후소(測候所)'는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기상관측소의 옛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관측하는 것은 기상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 그리고 계절의 흐름이다. 스기모토 히로시는 이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구한 옛날, 고대인들이 의식을 가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끝없이 펼쳐진 천공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의 기원이기도 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지, 중요한 반환점이 되는 하지, 통과점인 춘분과 추분- 하늘을 관측하는 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희미한 미래로 통하는 실마리가 열려 있는 것 같다."


변치 않는 절기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계절에 대한 지식을 모으고, 그 축적된 지혜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춘분이 오면 씨앗을 뿌리고, 하지에는 추수를 준비하고, 추분은 겨울을 대비했다. 동지는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 다시 빛이 찾아온다는 희망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관찰을 통해 지혜를 쌓으며 지금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하늘을 관측하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절기는 이미 초등학교 때 다 배웠는데 말이다. 궁금한 마음을 품고 오다와라로 향했다.

"생각없이 내려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도쿄에서 전철로 약 한 시간, 오다와라는 하코네로 향하는 관문이자 한때 관동의 강자였던 호조(北條) 가문이 다스리던 도시였다. 오다와라 성은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을 상대로 세 달간 농성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이다. 또한 이 지역은 닌자의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호조 가문을 섬겼던 후마 닌자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핫토리 한조와는 라이벌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오다와라는 가마보코로도 유명하다. 생선살을 쪄서 만든 어묵류인 가마보코는 이곳 스즈히로 가마보코 마을에서 그 제조 과정을 견학하거나 체험할 수 있다. 미유키 해변 근처에는 다양한 가게들과 신선한 건어물을 파는 상점이 줄지어 있어 항구도시가 주는 소박한 매력으로 가득하다.


에노우라 측후소로 가기 위해서는 오다와라역에서 JR 도카이도 본선으로 갈아타고 네부카와역(根府川駅)이라는 무인역으로 가야한다. 전철에서 내리는 순간, 탁 트인 파란 바다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일본의 '청춘 18'이라는 철도 패스의 감성 광고가 생각났다.

"생각 없이 내려버리는 경험을 한 적 있습니까?(思わず降りてしまう、という経験をしたことがありますか)"


네부카와역은 청춘의 방랑벽을 자극하는 그런 감성 광고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운 역이었다. 이곳에서 에노우라 측후소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자 시원하게 펼쳐진 겨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귤이 탐스럽게 달려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귤밭 한가운데 지어져 있었다.약 1만5000평의 부지에 세워진 공간이지만 하루 방문객 수를 제한해 개인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입장은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계절의 빛을 담는 공간들

스기모토는 이 곳을 설계하며 "세상과 우주, 그리고 자신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장소(世界や宇宙と自分との距離を測る場)"라고 했다. 그가 계획한 의도를 따라 우선 하지광 요배 100m 갤러리(夏至光遥拝100メートルギャラリ)로 향했다. 이곳은 한쪽 면이 대형 유리로 되어 있고 반대쪽은 석재로 만들어진 긴 갤러리인데, 기둥 하나 없이 37장의 대형 유리가 계속 이어져 있는 구조다.

갤러리에 걸려있는 것은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작품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걷다보면 탁 트인 바다로 이어진다. 이 긴 통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에 해가 뜨는 방향을 따라 지어졌다. 홈페이지에 실린 영상을 보면 하지의 해가 떠오르며 이 통로 전체를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다음 방문하게 되는 곳은 동지광 요배 수도(冬至光遥拝隧道)다. 하지광 요배 갤러리와는 60도 차이가 나게 만들어진 구조다. 탁 트인 하지광 요배 갤러리와는 다르게 동지광 요배 수도는 마치 지하묘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석조 터널을 지나면 동지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바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 끝나는 곳, 죽음에서 재생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 동지광 요배 수도(冬至光??隧道) 하지광요배 갤러리와 60도가 차이가 나는 곳에 동지광 요배 수도가 있다. 동지가 되면 바다에서 뜨는 태양이 이 공간을 통과하는 구조다.
ⓒ 정효정


바로 옆에는 원형극장에 둘러싸인 광학 유리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유리무대는 교토 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서 춤과 공연을 올리는 무대와 같은 크기다. 이탈리아 라치오주의 페렌토 고대원형극장을 그대로 실측해서 만든 원형극장에 앉아 유리무대를 바라보면 바다의 빛과 어우러져 미묘하게 색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동지날 아침에 광학유리로 만든 무대 위에 태양빛이 내려앉도록 설계되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일출의 빛이 정원에 설치된 돌무대로 향한다. 이 돌무대는 일본 전통극 '노(能)' 무대의 사이즈를 정확히 재현했다고 한다. 이렇게 에노우라 측후소는 모든 설치물의 구조가 계절의 순환을 느끼며 태양의 빛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설치물 명칭에 사용된 요배(遥拝)라는 단어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배를 한다는 일본의 토속종교인 신토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태양빛을 느낄 수 있도록 지어진 이곳 건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실제로 이곳에선 매년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사람들을 사람들을 초대해, 아침 해를 함께 보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고 한다.


영원한 순환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기

에노우라 측후소의 관람 코스는 다채롭다. 대나무 숲 길, 귤밭 길을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 스기모토가 수집해온 유물이나 그의 작품들이 놓여있다. 귤밭의 농기구 창고에는 농기구뿐 아니라 인류가 생겨나기도 훨씬 전의 오르도비시안기 삼엽충, 쥬라기 암모나이트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조몬 시대의 돌칼 등도 볼 수 있다.


거대한 석조 도리이를 지나면 작은 다실, '우초텐(雨聴天)'이 나온다. 이곳 역시 춘분과 추분의 빛이 닿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16세기 다도의 거장 센노 리큐의 소박한 다실을 본 따 다다미 두 장 크기에 흙벽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붕은 현대의 산물인 양철 지붕이다. 오래된 감귤농장의 오두막 지붕을 재활용했다고 한다.

아마 센노 리큐가 살았다면 가장 저렴한 재료를 썼을 거라는 것이 스기모토 히로시의 생각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비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비를 듣는 천국(雨聴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방문 시점은 2024년 1월 말, 마침 매화가 피는 계절이었다. 잠시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춘분으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코스의 마지막에 이르자 사가미만을 바라보고 있는 빨간 신사가 나타났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스기모토 히로시가 말한 그의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구도카이도선을 달리는 전철에서 바라본 사가미만의 경치가 그가 인간으로서 의식을 지닌 최초의 기억이라고 한다.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소년은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한다. 일상에서 차단되어 비일상으로 접어들며, 세상 속에 묻혀 존재하던 내가 분리된 것이다. 이때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스기모토 히로시와 BTS RM이 대담을 나눈 패션잡지 GQ의 일본어판에서도 그는 의식을 강조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동물과 달라진 지점은 의식이 생겨났을 때인데, 그 의식이란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등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예술은 그 의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가 지향하는 예술도 바로 그 의식에 대한 탐구였다.

당시 대담에 초청된 BTS RM 역시 현대미술과 고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RM은 '어째서 영원성이 있는 예술작품에 매료되냐'는 질문에 '바쁜 나날을 보낼 때는 물론 그 순간에 행복과 설렘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 같다'는 답을 했다. '그래서 가끔은 천천히 내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불변성이나 영원성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출처 :https://www.gqjapan.jp/article/20231013-bts-rm-sugimotohiroshi).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는 일어나는 자극을 초월해 영원성을 느끼기란 쉽지않다. 뉴스에는 연일 어두운 소식이 들려오고, 세상은 늘 곧 망할 것 같고, 나의 삶은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하다. 때로는 인생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 즉, 그동안의 경험이나 가치관, 지혜를 사용할 수 없는 일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을 무너트리는 것은 모든 변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무너짐 속에도 변치 않는 것은 존재한다. 고대인에게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내일이 온다는 약속이었고, 정확한 시기에 황도를 지나는 태양은 다음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하늘을 바라보고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는 행위는, 내가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며, 여전히 내일이 존재한다는 희망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거대한 우주 앞에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이 거대한 순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기모토 히로시가 현대인에게 절기와 지구의 순환을 느껴보라고 제안하는 것은 변화의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릴 때, 변치않는 질서에 기대어 다시 중심을 잡아보라는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불안정한 시대를 살며 진짜 중심이 될 가치를 찾는 일이 절실한 이들에게, 고대인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은 조용한 터닝포인트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여행 정보

1. 오다와라 문화재단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
세계적 사진 작가 스미모토 히로시가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 예술 작품, 고미술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2017년 최초 공개되었으며 아직도 일부 건설 중이다. 당일권 판매도 있지만, 예약 인원이 다 차면 더는 입장객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먼저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神奈川県小田原市江之浦362番地1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에노우라 362번지 1)
【연락처】 0465-42-9170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1시30분~4시30분
【휴관일】 화・수요일, 연말연시 및 임시휴관일
【입장료】 3,300엔 (인터넷 구매시)
【가는 법】 JR 도카이도 본선 네부카와(네부카와)역에서 왕복 셔틀버스 운영
오전 9:45/10:05/10:35 ・오후 13:15/13:40/14:00
【홈페이지】 https://www.odawara-af.com

2. 오다오라 오뎅 본점 (小田原おでん本店)
오다와라 가마보코 대회에서 여러번 우승 한 지역 오뎅가게다. 오다와라의 특산품인 귤이나 제철 채소를 이용한 가마보코가 유명하다. 점심에는 오뎅 정식도 있어 직장인들도 많이 찾는다. 평일에도 예약 없이는 이용이 힘들 정도로 인기다.

【주소】 神奈川県小田原市浜町3-11-30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 하마초 3-11-30)
【연락처】 0465-20-0320
【운영시간】 11: 00-21: 00 (평일 오후 2~5시 휴식 시간)
【정기휴일】 매주 월요일
【홈페이지】 https://odawaraoden.co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8110?cds=news_media_pc&type=edi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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