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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그라 맛 토종닭, 곰탕에 빠진 파스타 ‘서교난면방’ 본문
푸아그라 맛 토종닭, 곰탕에 빠진 파스타 ‘서교난면방’
이태리와 한국이 만나 새로운 난면 탄생
“음식의 국적 따지지 말고, 맛의 본질 즐겨야”
“서교난면방, 대를 잇는 문화적 공간 되고파”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내가 어디 출신인 게 뭐 그리 중요하오. 맛있으면 됐지.”
음식의 국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제는 음식의 국적이 어딘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 전통에 뿌리를 내린채, 새로운 요리가 꽃을 피우는 것이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해 편견이나 거부감을 갖지 말고 오로지 ‘맛’에 집중해야 한다. 음식의 국적에 매몰돼,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따지다간 음식의 본질인 맛을 놓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서교난면방’에서는 한식과 이태리식이 혼재된 새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이태리식을 한식으로 재해석했다든가 하는 부류가 아니다. 두 나라의 전통에 기인하지만 국적을 따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음식의 탄생이다. 어딘가 낯익지만, 한편으로 너무나도 생소한 맛의 경험은 신비로운 여행지를 방문한 여행자의 설렘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서교난면’은 1450년대 작성한 『산가요록(山家要錄)』과 1670년대 작성한 『음식디미방』 등 국내 고조리서에 나온 ‘난면’과 이태리의 ‘생파스타’에서 착안한 면 요리다. 난면과 생파스타는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를 섞어 반죽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면의 식감을 텐션이 강한 생파스타와 부들거리는 면의 중간 정도다. 굵기는 카펠리니보다는 가늘고 엔젤헤어보다는 굵은 정도로 1mm 이하다. 국물에 적셨을 때 가장 맛있는 굵기와 식감을 살리기 위함이다. 면을 한우 양지 육수와 제주 구엄닭 육수를 배합한 국물에 담아낸다. 구엄닭 육수를 낼 때는 샐러리와 양파, 당근 등을 함께 고아내는 이탈리안 방식을 착안해 풍미를 더했다. 고명으로는 구엄닭과 한우 수육, 라비올라와 구운 제철 야채 등이 올라간다.
서교난면의 국물은 일반 한우 곰탕보다 더 맑고 시원하면서 육향과 감칠맛이 도드라진 맛이었다. 면의 식감이 굉장히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먹던 소면, 중면보다 탄성이 있으면서 서걱거리는 부드러움이 국물과 조화를 이뤘다. 구엄닭은 촉촉한 식감과 함께 일반 닭에 비해 진한 육향이 느껴졌다. 라비올라는 이태리 전통 방식으로 식감이 살아 있었다. 구운 야채도 국물에 뭉글어지듯 녹아들지 않고 존재감을 뿜어내며 각각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서교난면으로 김낙영 세프는 올해 미쉐린 1스타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 오면 서교난면과 함께 꼭 먹어야 할 음식 있다. 구엄닭으로 만든 ‘피편’이다. 편육과 같은 음식으로 구엄닭의 껍질과 살을 배합해 눌러 만든 일종의 편육이다. 한입 먹자마자 감탄이 쏟아지는 맛이다. 녹진하고 감칠맛, 기름맛의 조합이 누구도 실망하지 않을 맛있는 맛을 만들어낸다. 마치 푸아그라, 아귀간과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일반 닭과 다른 구엄닭의 육향과 고소한 기름맛 덕분이다.
과거에 영감을 받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은 ‘서교난면’
서교난면방의 김낙영 셰프는 환경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33살 늦깎이 나이에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에 입학해 요리사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2012년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해, 2017년 생면 파스타 전문점 카밀로 라자네리아를 오픈했다. 이후 한식에 관심을 갖고 한식 문화를 연구하던 중 난면을 알게 됐고 2024년 서교동에 서교난면방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세상에 없던 자신만의 요리를 내놓게 됐다.
“서교난면은 과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과거에 머무른 요리가 아닙니다. 현재의 기술을 집양해 미래를 지향한 요리에요. 고조리서에 나온 ‘난면’에서 착안했지만, 이를 100% 구현하지 않았어요. 이탈리아식의 다양한 조리 방식을 착안하고, 면의 식감과 굵기도 지금의 육수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재설정했어요.”
김낙영 셰프는 사진의 요리의 국적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 다만, 국적의 경계를 깬 ‘맛있는 음식’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한다. ‘맛’은 국경을 넘어 보편적으로 인류를 설득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맛 없는 요리는 보편적으로 전 인류에게도 거부감이 있고, 우리에게 맛 있는 요리는 그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맛은 요리의 본질이고, 국적을 따져가며 스스로 편견에 사로잡혀 요리에 한계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제한이 오히려 미식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유럽 국가의 여러 나라 손님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외국인들이 홀을 가득 메우니 이 곳이 한국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한국인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따뜻한 난면 국물을 마시고 개운하고 시원해 하면서 아주 맛있게 드셨죠. 맛있는 음식은 국적 경계를 떠나 모두에게 공통적인 맛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야 말로 미식의 매력 아닐까 싶어요.”
서교난면방의 식재료에는 특별함이 있다. 한국의 토종 재료를 사용하려는 고집이다. 난면에 들어가는 밀은 국산 햅밀을 사용하고, 닭은 외국 품종이 아닌 제주도의 구엄닭을 쓴다. 이는 단순히 한국의 전통에 목을 멘다거나, 한식의 색을 뚜렷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단 맛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요리를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김낙영 셰프는 외국 식재료에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현재 식문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미식 문화가 지속되기 힘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국심에 따라 전통적인 재료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에요. 이것은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문제에요. 외국의 식재료에 의존도가 커지기 시작하면, 현재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식재료마저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이미 밀은 99%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어요. 닭 역시 99% 수입된 외국 품종에 잠식된 상황이구요. 대체 불가능한 식재료는 어쩔 수 없지만,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로컬 식재료 시장이 우선돼야 해요.”
김낙영 셰프는 면의 맛에 심혈을 기울이는 만큼, 제면이 사라진 한국 요식업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경제적 셈법만 따져 제면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의 면이 문화로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김낙영 셰프의 우려는 깊어져만 간다.
“한국의 제면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셰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일본의 라멘이나 이탈리아의 파스타 등은 유학까지 가서 배우지만, 한국의 전통적 면 요리는 그 문화적 가치가 소실되는 것 같아요. 일제시대와 6.25 등을 거치면서 한국의 식문화가 처참하게 망가진 것 같아요. 그런 역사적 비극이 없었다면, 한국의 식문화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풍성한 음식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김낙영 셰프는 서교난면방이 대를 이어 긴 역사를 이어가는 식당으로 자리잡는 것이 꿈이다. 꼭 자식에게 가게를 물려주겠다는 말이 아니다. 실력이 있고 욕심과 열정이 있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를 자식삼아 식당을 물려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다. 실제 그런 식으로 대를 이어가는 식당이 일본이나 유럽 등에는 여럿 존재한다. 그는 그렇게 서교난면방의 난면이 하나의 오래된 음식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
“오래된 외국의 유명 레스토랑을 보면서 항상 동경했던 부분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를 이어 그 문화를 지키는 것이었어요. 대를 이어 내려온 레스토랑과 그 곳의 요리가 역사 속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 부러웠달까요. 저도 서교난면방이 그런 식당이 되기를 바라요. 그것이 음식의 생명력이고, 문화를 견고하고 또 다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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