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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넌 쓰레기야" 들었던 아이, 매일 20km 걸으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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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넌 쓰레기야" 들었던 아이, 매일 20km 걸으니…

SM_SNAIL 2025. 4. 4. 07:35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학대피해아동 위한 2인3각 제주도 도보여행 마련
멘토와 학대 피해 아동 함께 걸으며, '나도 할 수 있다'며 자존감 높여
한국경제인협회 후원 "건강한 삶 되찾을 수 있게 돕는 건 우리 사회 중요한 과제"

 

2020년. 당시 열한 살이었던 서준이(가명)가 선생님께 칭찬 받은 쪽지를, 엄마에게 자랑하려 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란 자의 말이 이랬다.

"원래 선생들은 누구한테나 칭찬해. 그래서 너처럼 못돼 먹은 애한테도 그러는 거야."

심지어는 이런 욕들도 서준이에게 쏟아부었다.

"야 XX 쓰레기야. 아무도 너 같은 XX랑 살 필요 없다.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마라. 이 XX 쓰레기야."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죽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길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며. 초등학교 1학년 땐 온몸이 보랏빛이 되도록 맞기도 했다. 한겨울엔 '강하게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냉골에서 덜덜 떨게 했다.

서준이 부모는 아동학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아이는 분리돼 시설로 들어갔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아이가…제주에서 걸었다

서준이 멘토 박정만씨(왼쪽)와 서준이. 불그스름한 바다를 바라보는 두 사람./사진=서준이의 제주 도보여행 멘토였던 박정만씨, 일명 '캠핑집사님' (인스타그램 @campingbutler)반항과 공격성, 그리고 불안. 잘 자라기도 모자랄 시간에, 서준이는 그런 것들과 싸워야 했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이하 대아협)가 고심해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대 피해 아동들의 정서를 회복하게 하려고,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다름 아닌 '걷기'였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거였다.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제주에서.

함께 걸으면 더 오래 걸을 수 있다고./사진=서준이 멘토였던 박정만씨, 일명 '캠핑집사님' (인스타그램 @campingbutler)'2인3각 제주도 도보여행'이라 일컬었다. 8박 9일간 멘토와 멘티(학대 피해 아동)가 함께 걷는 거였다. 거리가 만만찮았다. 하루 15~20km씩 걸어야 했다.

서로 걸음을 맞추며 유대감을 쌓고, 목표를 이루어 나를 좀 더 믿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과정을 거쳐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어이 믿도록. 이는 프랑스 '쇠이유'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은 거였다. 실제 이를 완수한 아이들은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극히 낮아졌다.

서준이도 제주 전역을 8박 9일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힘들어 했다. 힘들어 걸음이 느려질지언정 포기하지 않았다.

서준이가 대아협에 보낸 손편지./사진=대아협아이는 제주에 다녀와 대아협에 손편지를 보냈다. 일명 '제주도에 갔다온 후 바뀐 점'이었다. 내용이 이랬다.

제주에 갔다 온 뒤 나에게 다짐과 약속이 생겼다. 되도록 친구들에게 욕설을 쓰지 않기. 글씨를 또박또박 쓰기.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기.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격려하기.

앞으로 제주에서 또 걸을, 서준이처럼 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위해 이런 글도 남겼다.

제주는 오름도 많고 산도 많아. 힘들었지만 난 그걸 해냈고, 너희들도 해내길 바랄게. 참고 견디면 나중에 큰 어른이 될 테니까.

서준이가 대아협에 보낸 손편지. 제주에 걸으러 갈 다른 아이들을 위한 당부도 남겼다./사진=대아협올해도 네 명의 학대 피해 아동과, 네 명의 멘토가 함께 걸으러 갑니다

꽃피는 4월 1일, 제주로 함께 도보여행을 떠난 멘토와 학대 피해 아동인 멘티. 고된 여정이 끝난 뒤엔 무언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 영화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늘 그렇듯이./사진=대아협대아협은 올해도 '2인3각 제주도 도보여행'을 마련했다. 학대 피해 아동 4명이, 각자의 멘토와 함께 걷는다.

멘토도, 멘티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현직 경찰인 김영훈씨(56)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사건을 맡으며, 학대 피해 아동들의 삶에 깊이 관심 갖게 됐다. 그와 함께 걸을 주원군(가명)은 어린 시절 부모님 이혼과 학대 경험으로 방황했다.

주원군은 "제주서 매일 함께 걸으며 민감한 마음을 더 단단히 다지고 싶다"고 했다. "이루고픈 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도보여행을 응원하러 간,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들. 송재형 팀장(왼쪽)과 박효진 차장(오른쪽). 가운데가 멘티 아동(왼쪽에서 두 번째)과 멘토 이지현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후원이 계속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사진=대아협올해 도보여행은 한국경제인협회가 후원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이어 "학대 피해 아동들이 희망을 찾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길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매일 걸은 뒤엔 일기와 소감문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리 쓴 걸 바라본다. 바라보며 얼마나 변화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것. 여행을 마친 뒤엔 평가 회의와 사후 관리로, 아이들이 계속해서 정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돕는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형성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라며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5175685?cds=news_media_pc&type=edi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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