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농촌소멸 막을 열쇠, 청년 여성 농업인… “차가운 편견 넘어 ‘기업농’ 꿈 키웁니다” 본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X 여성신문 공동기획 특별좌담회
[청년여성농업인을 만나다]
김수정
“농업회사법인 취업도 좋은 방법…멘토-멘티 제도 활성화돼야”
류희경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 필요…일관성 있는 농업 정책이 중요”
박다정
“농촌에 정착한 청년들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 필요”
안다섬
“농촌지역 여전히 성차별 만연…심리상담 창구 마련해야”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촌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잿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한 청년여성들이 하나둘 농촌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제 더 많은 청년여성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제도와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여성신문은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청년여성 농업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좌장 이하나 여성신문 편집국장
패널
장태평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수정 그린에이션 대표
류희경 크로프트 대표
박다정 한맥 대표
안다섬 장안산할매 대표

좌장 "청년여성농업인의 농촌 정착을 위해 어떤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춰 말씀 부탁드린다. 먼저 농촌에 정착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주제로 시작하면 좋겠다."
김수정 "기업가 정신, 경영 등 다 공부했는데도 창업이라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더라. 다행히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이 많았고, 청년창업농(청창농) 제도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제도도 좋고, 제도를 안내해 주는 분들도 다 친절한데 겪어보지 않았던 것이라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멘토-멘티 등이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다. 저처럼 기반이 있는 사람도 어려운데, 기반이 없는 분들에게는 특히 정신적 멘토가 필요하다. 또 저는 농업회사법인에 취업하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회사에 취업해 경력을 쌓으면서 돌아가는 구조 등을 보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류희경 "한국의 실정을 알아가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컸다. AI(인공지능)와 데이터를 활용하면 수익과 생산량 증대, 에너지 절감 측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혜택들이 있으니 '함께 실증(PoC) 하자', 'AI가 제어하게 해달라'고 큰 농가의 문을 많이 두드렸다. 처음에는 '데이터, AI 좋지'라며 알겠다고 했다 막상 AI가 제어한다는 말을 드리면 '망하면 어떡하냐'며 발을 빼시더라. 농업이라는 분야 자체가 보수적이고 1년 농사가 망하면 1년 치 소득이 사라지는 것이니 두려워하는 부분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도나 데이터를 통해 혜택을 본 경험이 없으시다 보니 저희가 누차 설명해 드려도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시는 것이다.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과 데이터의 효용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정책의 불일치 문제도 있다. A 지역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농사를 짓다 B 지역에 온실을 짓게 됐는데, A 지역에서 지원되던 농업 폐기물 처리가 B 지역에서는 하나도 지원이 안 된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박다정 "2014년 처음 농업을 시작했을 때는 청년농업이라는 단어 자체도 없었다. 청년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고, 거기에 더해 '여자가?'라는 인식도 있었다. 농업인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 문제아로 봤기 때문에 한동안 농업인이라는 말도 못 꺼내고 은둔형 외톨이처럼 밭과 집만 왔다 갔다 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농사짓는다는 말을 못 했다. 취업해야 할 나이에 대학 교직원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으니 다들 '왜 저러는 거지?', '어디 문제가 있는 건가?'라고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다 농협중앙회에서 만든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이라는 단체에 가입했는데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스스로를 농업인으로 소개하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직업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안다섬 "농업계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지 않나. 시설, 장비, 농지 구입 등 모든 게 다 힘들었는데 특히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더 힘들었다. 또 여성 농업인이다 보니 '여자가 왜 농사를 짓냐', '시집이나 가라', '밥이나 해라'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도시에 있을 때는 겪지 못했던 차별이 너무 심했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밖에 성차별, 성추행 등의 문제가 많았고, 이런 순간들이 계속되다 보니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많이 들었다."

좌장 "정책 지원과 관련해 혜택도 많이 받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분명 많을 것 같다. 어떤 부분이 효용성이 있고,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가."
안다섬 "산업 전체를 놓고 보면 농업에 대해 큰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수인 농업인 안에서도 여성농업인, 특히 청년여성농업인을 위한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 자립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농촌에서 청년 여성으로 살아가기에는 여전히 많은 차별과 장벽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청년여성농업인을 육성하고 이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북에는 귀농여성이나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 정책은 별도로 규정돼 있지만 청년여성농업인에 대한 정책은 없다. 청년여성농업인 육성이나 이들의 안전한 정착과 관련된 부분들이 조례로 규정될 필요가 있고, 청년여성농업인이 농촌의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의 청년농업인 정책을 수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좌장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 여성들이 지역에 정주하게끔 하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하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정관념이나 성차별 등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가 남아 있을 수 있고, 결혼과 육아 문제도 있을 것 같다."
김수정 "아이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시골에서 많이 키운다. 하지만 결국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을 도시로 보낼 수밖에 없다. 또 주말마다 도시로 학원을 보내면서 픽업을 하더라. 예산이 주어질 때는 시골로도 강사들이 오는데, 예산이 끊기면 못 오고 매끄럽지가 않은 것이다. 면 단위로 지속적으로 예산이 주어지면 학원 강사를 모실 수 있고, 학부모들이 이를 주관할 수도 있다."
박다정 "주변을 보면 초등학교 때까지는 읍·면에서 육아를 하는데 결국엔 시로 나가더라. 저는 딱히 불편한 걸 모르겠는데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분들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다섬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는 성차별이 만연하다. 제가 살고 있는 장수는 인구가 2만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곳인데 '왜 여자가 바깥 활동을 하냐', '집에서 밥이나 해라' 등의 말은 기본이고 여성이 밖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더라. 도(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농업단체의 회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70년 만의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는데, 이후에도 말이 많았다. '여성이 회장인 해에 있지 않겠다'며 탈퇴한 남성 회원도 있었고, 오기로 농사를 계속했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다른 청년여성농업인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농촌 사회에서는 꽃이 있어야 벌이 모이기 때문에 꽃인 여자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저는 꽃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벌이 돼 함께 나아가고 싶다."

좌장 "여성농업인 네트워크 커뮤니티 구축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안다섬 "농업인 단체 활동을 하면서 그 안에서도 청년여성농업인들을 따로 모아서 여성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청년여성농업인이 대단한 정책이나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모여서 여성농업인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여성농업인은 쉽게 잘 모이지 못한다. 특히 결혼해 아이가 있으면 아이의 등하교, 교육 문제 등으로 모임에 나가지 못한다. 네트워크 구축은 너무 좋지만, 이를 위해서는 아까도 언급한 어려움들이 먼저 해소돼야 한다."
김수정 "시골에 있으면 왔다 갔다 하는 데 드는 시간도 크다. 비대면으로 모임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좌장 "추가로 필요한 정책 지원과 제안, 보완점 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김수정 "농업이 확장됨에 따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체험 농장 등도 법인으로 들어왔다. 또 농업회사법인 관련 지원 사업이 추가되면 법인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존에 농업회사법인을 보유한 분들도 고충이 있더라. 젊은 사람이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이어가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회사법인이 매력 있는 회사라는 것을 홍보할 필요도 있다. 농업만 한다 하면 청년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애그리테크(Agritech·농업과 기술의 합성어)에 기반한 융복합 회사고, 확장성이 있는 회사라는 비전을 제시했을 때 청년 입장에서 취업해 볼만한 곳이라는 호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농업회사법인의 브랜딩 능력도 필요하다."
류희경 "창업하면서 느낀 불편한 점은 지역에서 스타트업, 기술, 창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의 경우 재무제표 등 세무 회계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재무 안정성을 갖추고 성장하면서 나중에 상장도 할 수 있는 궤도를 탈 수 있다. 이걸 초반에 잡아주는 것이 회계사, 세무사, 법무사들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 분이 한 명도 없었다. 세무, 회계적인 부분은 서울에 맡긴다지만 법무사분들은 지방법원과 소통을 해야 하다 보니 서울에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부분들이 함께 지원돼야 창업한 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다."
박다정 "평창군에서 2018년부터 약 2년 전까지 청년 창업농들을 대상으로 현장 방문단 멘토·멘티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런 현장방문단이 작년부터 없어졌더라. 그러니 이들이 1년 동안 농업을 열심히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공유가 안 돼 아쉬웠다. 정착한 청년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안다섬 "청년여성농업인도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특수건강검진 대상 연령 제한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농촌에서 남성은 기계를 쓰는 일이 많은 반면, 여성은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하거나 몸을 쓰는등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된 건강관리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마저도 51세부터 70세까지 가능해 청년여성농업인은 건강검진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또 영농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성차별이나 성추행 등의 스트레스가 크다. 사건이 생겼을 때 이야기할 곳도 없고 '여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청년농업인을 대상으로 영농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여성농업인들이 나가고 싶어도 투자를 해놓은 게 있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 지금 당장 농사를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심리상담 창구를 마련한다면 이들이 크게 좌절하거나 안 좋은 사례까지 안 가지 않을까."
장태평 "회계, 노무, 채용 등 복잡한 문제를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방안을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법인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해보려고 한다. 건강검진 나이 제한은 전체를 한꺼번에 관리하기 어려워 이렇게 설정한 부분이 있는데, 잘 조성해야겠다. 상담지원은 사실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농업 부문에 어떻게 상담을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마무리하자면 우리나라에 남성농업인들은 크게 성공한 분들이 많지만 여성농업인분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그렇게 성공한 분들이 많이 없다. 오늘 여기 모인 네 분이 테이프를 끊으면 좋겠다. 앞으로 농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영웅이 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24226?cds=news_media_pc&type=edi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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