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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입니다, 환자치료 위해 '용접'에 도전했습니다

SM_SNAIL 2025. 3. 2. 14:10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다양한 유해인자 어우러진 용접 일... 경험하고 알게된 사실


특수건강진단을 하게 되면 다양한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을 마주하게 된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잠깐 마주하는 노동자가 업무로 인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빠르지만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것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주된 임무이다.

다른 과 의사들이 주로 눈에 보이는 신체 진찰 결과나 검사 결과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환자를 파악하기 위해 상당한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물론 관련 지식을 배우고 실제 작업하는 모습도 많이 보지만, 직접 그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입장에서 내가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가슴 한편에 찜찜함이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그 작업이 다른 작업에 비해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유해 인자들에 노출되는 경우에 더 그렇다.

'유해인자 패키지' 용접 작업을 배워 보자

경험상 용접 작업은 노출되는 유해인자의 종류가 가장 많은 업무 중 하나이다. 용접 흄, 소음, 망간, 산화철, 카드뮴, 크롬, 텅스텐, 일산화탄소 등의 물리 화학적인 인자들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과 작업 위치에 따른 근골격계 부담 요인 등 다양한 유해인자가 패키지처럼 어우러져 있는 작업이다.

한편,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조차 위원이 직접 그 작업을 해 보았다면 내려지지 않을 아쉬운 판정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득 용접 작업을 직접 배움으로써 조금이나마 이러한 작업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용접 자격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선,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다는 용접기능사 필기 수험서를 구입했다. 사실 이런 기술 쪽 내용은 산업보건학적 내용 외에는 배경지식이 없어 낯선 용어투성이였다. 용접의 종류(아크 용접, 가스 용접의 차이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 수 있어서 피상적으로만 알던 용접 작업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용접 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인자의 종류, 이에 대한 대책, 관련된 직업병의 종류 등 산업보건에 대한 내용이 너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기껏해야 유해 가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화재 방지 방법에 대한 내용 몇 페이지가 전부였다.

자격증 필기 공부가 예비 용접 노동자들이 작업 전에 이러한 내용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임을 고려하면 안전보건에 대한 내용이 좀 더 보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나는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나름 좋은(?) 성적으로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신발에 불똥 튀어 추락했다는 이야기가 이해된 순간

이제 드디어 실제 용접기를 잡아볼 차례였다. 용접 기능사 실기 시험 때 평가하는 아크 용접을 배울 수 있는 직업전문학교 문을 두드렸다. 보통 국비 지원을 받아 수강하는데 나는 이런 지원 대상에 해당이 없는 직장인이라 내 지갑을 털어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 시장에서 용접할 때 입을 작업복과 안전화를 구입해서 들고 갔다. 대부분의 연습은 천정에 국소 배기장치가 달린 작은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용접 작업이 상당히 두렵게 느껴졌다. 용접면의 눈 부분은 아크 광을 차단하기 위해 흑색 유리로 되어있어서 이것을 쓰면 용접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용접기에 전류를 흐르게 하여 용접봉을 잡고 섭씨 수천 도에 이르는 아크를 발생시키자니 감전이나 화상을 입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용접봉을 작업물에 너무 가까이 대어 용접봉이 순간적으로 달라붙어 깜짝 놀라 도구들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진료실 책상에서 환자를 보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 일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크 불꽃은 사정없이 튀어 나의 청록색 작업복에 구멍을 숭숭 내었고 가끔 작업화 안으로 불똥이 튀어 들어갈 때는 깜짝 놀라 부리나케 신발을 벗어 던지기도 했다. 건설 현장에서 높은 곳에서 용접 작업을 하다가 불똥이 신발 안으로 튀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떨어졌던 작업자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지도도 받고 유튜브 영상도 보며 열심히 연구했지만, 두 철판을 맞대어 용접하면 용접선이 울퉁불퉁해 도무지 깔끔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새삼 이러한 작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건축물, 배관, 교통수단 등을 만들어 내는 기술자들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자격증 시험부터 안전과 건강 다뤘으면


용접으로 두 철판을 잇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용접 후에도 슬래그를 제거하고 표면을 정리하는 등 후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작업에서는 불편한 자세를 경직된 채로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해야 함을 몸으로 겪었다. 또한 국소 배기장치는 소리는 요란했으나 필터 관리 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여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정말 내 호흡기가 안전한지 열선 풍속계로 성능부터 확인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모든 장치는 천장에 연결되어 있어 용접 흄이 나의 안면부를 지나쳐서 천장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어 설계에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직업학교 단계부터 설비를 잘 관리하고 안전 및 보건 교육을 병행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용접 작업뿐만 아니라 슬래그 처리를 위해 해머로 두드리는 과정이 상당한 소음을 동반하며, 반복될 경우 손목 관절에 유해한 국소 진동 인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용접 작업을 한 모재는 용접용 가죽장갑을 낀 채로 집어 들어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상당히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정도라서 사고의 위험이 높았다.

절박함이 부족했을까. 몇 달간의 연습 후 치른 실기 시험에서는 결국 맞대기 용접에서 비드가 균일하게 나오지 않아 불합격하고 말았다. 자투리 시간을 내어 땀 흘려 가며 연습했는데 긴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후에 용접하는 분을 만나면 이전보다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뿐만 아니라 작업환경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모든 작업을 의사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히 책으로, 또는 어깨너머로만 작업 현장을 구경할 때보다 노동자들의 시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동건강 전문가로 활동하는 분들은 기회가 된다면 좀 더 현장으로 깊이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2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이정엽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4329?cds=news_media_pc&type=editn

 

의사입니다, 환자치료 위해 '용접'에 도전했습니다

▲ 용접 작업을 직접 배워서, 다양한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경험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에 용접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 이정엽 특수건강진단을 하게 되면 다양한 유해인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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